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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악기와의 첫 만남


CBN 기자 / 입력 : 2012년 12월 03일
↑↑ 팝피아니스트 이권희
ⓒ CBN
팝피아니스트 이권희의 My Life My Piano





제1화. 악기와의 첫 만남



내가 태어나 자란 마을은 시골서 살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려 낼 수 있을법한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곳이다. 마을 한 가운데는 몇 백 년 된 당수나무가 그 위엄을 자랑하며 서 있었고 밥그릇을 엎어 놓은 듯한 소박한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수많은 나무들이 빽빽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주는 따뜻한 곳 이었다. 또한 마을 앞에는 폭이 아주 넓은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비가 조금만 와도 강물은 홍수 난 듯 엄청난 양의 물이 흘러갔다.

학교 다닐 적엔 비오는 날이 은근히 기대 되기도 했다, 강폭이 넓긴 하지만 평소에는 징검다리로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양의 물이 흐르다가 비만 오면 이산 저산의 물들이 한꺼번에 모여 흐르는 엄청난 괴력을 가진 괴물로 변하니 학교를 안가도 되는 명분이 되어 주곤 했으니..

하지만 비가 오기는 하되 기대만큼 오지 않은 날이면 포크레인이 강 물살을 뚫고 마을로 우릴 데리러 오곤 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포크레인의 흙 담는 곳에 애들을 서넛을 싣고 공중으로 들어 올린 뒤 마을에서 강건너편 도로까지 옮겨주곤 했다. 지금은 그리 할 수 도 없지만 도와 주고픈 마음에 그리 한다고 해도 고소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절대 칭찬 받을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 기사에게 부모님들은 정말로 진심으로 머리 숙여 고마워 하셨다.

우리는 어린 마음에 왜 그리 고맙지 않고 야속했는지..



여름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온 마을 사람들은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마을입구의 나무 밑이나 강바닥에 자갈을 평평히 고른 뒤 가마니를 깔고 하늘을 천정으로 삼으며 누워 시원한 바람을 즐기거나 달빛아래서 감자랑 옥수수,고구마를 구워 먹으면서 한사람이 노래한곡을 시작하면 약속이나 한 듯 전부 합창으로 부르면서 밤을 즐기곤 했다.

참 마음 따뜻하고 아련한 시간 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어떤 노래든 한번 들으면 잊지 않고 카메라로 찍듯이 기억 했다. 뿐만 아니라 목청도 이쁘게 잘 불렀던 것 같다. 어른들에게 이가수로 불리어 졌고 노래할 분위기에는 항상 내가 빠지질 않고 당연히 내가 먼저 불러야 했다. 시골 명절 이벤트인 근동 세 개 동네 청년회에서 주최하는 노래자랑이 있었는데 빠지질 않았다. 대부분 청년들이나 어른들이 나오는데 어린이였던 내가 너무 멋들어지게 잘 불러 다른 동네 분들을 놀라게 했다. 차마 아이에게 1등을 주실 수가 없노라시며 미안하다 하시고 2등을 주셔서 농사일에 아주 요긴 했던 큰 물통을 상품으로 받은 기억이 있다.

악기와의 첫 인연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할 만큼 순간적인 호기심 이었다.

그때만 해도 마을마다 다니면서 매일 리어카로 고물을 수거하러 다니는 엿장수가 있었다. 그 엿장수는 뒤 닦이로도 쓸 수 없어 뻣뻣해 팔아야 하는 헌책이나 빵꾸난 고무신, 너무 오래 써서 구멍 난 솥 등의 물건과 엿을 바꿔 주는데 주전부리가 마땅히 없던 시절인지라 그 달콤한 유혹에 못 이겨 집에 있는 낡은 것들을 엄마 몰래 야금야금 엿장수의 리어카로 날랐다. 집에 바꿀 물건이 없으면 또래나 나보다 어린 애들을 꼬여 팔게 하고 엿을 나누어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엿장수의 리어카에 낡은 하모니카가 놓여 있었다. 그때 내 눈에는 마치 하모니카에 핀 조명이 켜진 것처럼 그 하모니카 밖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그 달콤했던 엿 맛도 기억나지 않고 오로지 나의 시선은 하모니카 만을 좆았다. 어떻게 하면 저 예쁜소리가 나는 걸 가질 수 있을까 조그만 머리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집에 가지고 나올 물건은 더 이상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뛰어 들어가 마늘이랑 쌀을 닥치는 대로 가지고 아저씨에게로 가서 바꾸자고 졸랐다. 아저씨는 아이들이 엿이 먹고 싶어 종종 부모 몰래 양식들을 훔쳐내 오는 것을 받았다가 부모들로부터 원성을 듣곤 했던지라 안된다고 했지만 바꿔 달라는게 엿이 아님을 알고 못이기는 척 하모니카를 내주셨다.

그때 그 기분이란.....

엿대신 그 하모니커를 들고 바로 집으로 와서 치약으로 깨끗이 닦은 뒤 입으로 부는데.. 소리가...소리가..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화려한 음의 조화가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던지...

얼마나 열중해 있었는지 하루도 안돼서 연주 비슷하게 소리가 났다. 온종일 입에 물고 마을 곳곳을 불고 다니니 어른들께서 신기하게 여기시고 시험 삼아 “나그네 설움“곡을 연주해 보라 하셨다. 나그네 설움은 동네 어른들이 입에 달고 다니셨던 노래라 모를 수가 없던 노래였지만 연주를 한다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하모니커란 악기는 음계가 바람을 내뱉고 빨아들이고 하면서 연주하는 것이므로 그 음계를 체계적으로 배우며 연습하지 않으면 쉽게 연주 하기 힘든데 나그네 설움이 음이 되어 흘러 나오자 어른들은 너무나 대견해 하셨고 줄줄이 신청곡이 이어졌다. 물론 내가 아는 곡들이었고 연주가 되었다.

나는 마을에서 스타가 되었고 나는 연주가 가능한 내 자신이 너무 벅찼다. 나는 예술가가 되었고 음악인이 되었다.
CBN 기자 / 입력 : 2012년 1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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